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매일 써뒀던 일기를 5년 만에 보게 됐다. 때는 호주에 머무른 지 50일째 되는 날인가 보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50일 차 일기
아침 10시
아침에 일어났는데 마치 한국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느꼈던 고향 같은 Smell)
눈이 떠지는 동시에 뭔가 몸을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뒤처질 것만 같은 복잡한 심정이었다. 호주에 와서 처음 느끼는 조급 함이었다.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귀찮았다.
'8시간 동안 일 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고 싶은데 Certificate 수료하려면 아직 50일이 나 남았는데, Full-time 일자리는 구하기 어렵겠네.'
현재 호주에서 단기로 Hospitality 수료증을 이수하기 위해서 학교를 다니는 중이다. 그래도 나는 외출할 때마다 '이력서'를 가슴에 품고 다닌다.
연습 삼아 한 번씩 주변 음식점이나 매장에 들어가서 이력서를 내볼 생각이 늘 머리에 있기 때문에 ^------^
그렇지만 오늘은 딱히 이력서를 내 볼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아까 이력서 1개를 대학교 기숙사 Front desk에 제출하고 온 나란 사람)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동안 돈을 버는 게 하나의 과제다 보니, 일자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진지한 생각에 잠겨있는데 친구 놈이 바늘을 빌려달랬다. 고물가 호주에서 펑크 난 양말도 고쳐 신는 이 자세!!
그때 그동안 드문드문 이력서를 내봤던 한 디저트 카페에서 연락이 왔다. 거절했다. 처음부터 거리가 너무 멀어서 거절할 생각이었다.
'발 빠르게 시도하면 되는구나!!! Job offer가 한 번은 오는구나! 내가 원하는 포지션에서 일하려면 Action과 판단을 빠르게 실천해야겠다.'
기분 좋은 Good start of the day! 오늘 같이 기분 좋을 때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아무 일이 없어도 아무 일을 만들러 나가야 한다. 그게 다시는 없을 기회 '워킹홀리데이'를 대하는 쿨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오전 11시, 카페
센스 넘치고 친절했는데 실력도 좋은 바리스타의 서비스! 커피는 진짜 대만족이었다. 민트색 인테리어를 좋아하던 내 친구는 더블 초콜릿 머핀하고 플랫 화이트를 주문했다.
더블 초콜릿 머핀은 뭐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맛이었는데 라테 아트가 귀엽고 커피 맛이 고소했다.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만났던 친구들 덕분에 진짜 하나도 몰랐던 디저트 세계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고마워!)
무엇보다도 나는 스콘을 전혀 먹지 않았었는데, 호주에 와서 클로티드 크림에 눈을 떠버렸네? 한국에서는 이 클로티드 크림을 제공해 주는 카페가 적은 편이라서 그 존재에 대해 잘 몰랐다.
사실 나는 디저트나 맛집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인 데다가, 예쁜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엔 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서양식 브런치나 빵 종류를 첫 끼로 먹기에는 소화력이 약한 편이라서 즐기지 않는다. 그런 내가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취업하겠다고?
심지어 나는 디저트 이름과 재료들을 외우는 데에 한참이나 걸린다. 관심이 없으니 음식 이름도 매번 까먹기 일쑤... 오죽하면 한 친한 친구가 나를 앉혀 놓고 이렇게 가르쳐 줬다.
"티라미수는 마스카포네 치즈로 만들어."
'응... 그렇구나 마카포치네, 마치 카포네...'
그런 나지만 요즘은 그래도 아무 카페에 가서 바리스타에게 예쁜 라테 아트를 부탁해 보는 게 취미다.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일하고 싶은 열정 어필
바리스타는 내 커피에 나뭇잎 라테 아트를 정교하게 그려줬다.
무엇보다 맛이 진짜 좋았다. 진짜 인상 깊었던 것은 커피를 다 마셨을 때, 커피 잔에 마치 나뭇잎 한 장 툭... 떨어진 것처럼, 커피 잔 맨 아래에 나뭇잎 아트만 깔끔하게 남았다.
이걸 명분으로 바리스타와 몇 마디 더 나눴다.
"제가 커피를 다 마셨는데도 라테 아트가 아직도 살아 있어요."
"그렇게 아트를 살리며 커피를 마신 손님은 네가 거의 처음이야."
"우유 스팀을 진짜 잘하시네요. 게다가 커피도 정말 맛있어요."
이 바리스타는 자기 일에 자부심이 있고, 자기가 만든 커피 맛에 대한 자신감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는 꼭 손님이 많네.)
나는 그 카페의 job vacancy에 대해서도 살짝 물어봤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그분이 이 카페에서 최고의 바리스타라로 Full-time 근무하며 커피 맛을 지배하고 있었다.
"우리 카페에서는 새로운 직원을 뽑을 계획은 없지만, 일 하고자 하는 너의 적극성이 좋아 보인다."
그러면서 자기의 인스타그램을 follow 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호주의 바리스타와 첫 인별그램 친구가 되었다.^^
호주에 온 지 50일 밖에 안 돼서 몇몇 한국인 친구들을 제외하고 아는 지역사람이 없었는데 신난다~~~
지역 사람들과 대화 나누고 싶을 때 꽤 좋은 장소가 바로 음식점이나 카페인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바리스타'라는 포지션에 한 발 다가선 기분이 드는 하루!
가슴에 품은 이력서 1통
오전에 카페에서 바리스타와 카페 취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인별그램 친구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오후에 House inspection을 갔다가 어떤 대학교 기숙사에 이력서를 냉큼 제출해 봤다. (기분이다!)
"안녕하세요! 혹시 채용 담당 매니저분이 계신가요? 제가 여기에서 일하고 싶어서 이력서를 들고 왔는데요!"
"흠, 우리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보다 학생 비자를 가진 지원자를 선호한답니다. 아쉽군요."
"아 그럼, 제 이력서에 대해서 피드백 좀 해주세요!"
와^^;;; 나 아까 어떻게 이력서 피드백을 요청했던 거지? 정말 급진적이네. 그래도 역시 밖으로 나가서 얻는 게 많은 날이었다! 매일이 모험인 워킹홀리데이가 좋다♡
낯선 사람의 초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아까 카페에는 일하던 한 한국인 직원이 있었다. 서빙을 담당하셨고 영어는 그렇게 잘하는 편도 부족한 편도 아니었다. 그분은 고맙게도 우리에게 대화를 먼저 걸어주셨다.
대화하면서 우리가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불안해하지 말고 즐기라고 조언해 주셨다. 아무래도 나와 내 친구 입장에서는 어른이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라서 대화를 계속 이어갔고, 카톡 아이디를 교환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한국인 직원이 오늘 우리를 처음 봤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집으로 저녁 식사 초대를 했다. 낯선 사람에 대한 내 방어기제가 '의심'이라 초대에 응하고 싶지가 않아서...
"싫어요!"
나는 크게 외쳤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외친 게 다야ㅠㅠ (여전히 저녁 식사 초대를 거절하지 못해서 마음이 불편한 상태.)
나는 People person인 만큼 친화력이 좋은 편이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이 즐겁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새로운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천천히 알아가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고,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동안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얽혀서 힘들었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물론 내가 해외 생활 경험이 별로 없어서 내 의견이 다 맞는다고 보진 않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친절하다.'
이 감정은 때로는 위험하다.
'워킹홀리데이'라는 자유와 해방감, 긴장과 설렘, 공포와 불안, 외로움 등등... 다양한 감정이 한 무더기로 쏟아지는 이 기간 동안에는 새로 사귀는 사람들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마 내가 겁이 많아서 친절한 사람을 어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호주 사람들은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져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라고 들었다. 아마 호주에 이민호는 한국 사람은 꽤 많이 외로울 수 있겠단 생각도 든다.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반가운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을 천천히 알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기억하자.
"무조건적인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엄마 아빠 이외엔 없어."
5년 전 일기를 보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호주 워홀 1년 동안 이상한 느낌은 거의 틀리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친구 2명 하고 그분들 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왔는데, 그분들은 친절하고 성실하게 살고 계신 분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딱 거기까지만 해야 한다는 걸 직감했다. (손절해서 죄송해요.)
그 이유는 미지의 종교 세계와 얽힐 순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해외 경험이 많지 않고, 소심해서 사람을 너무 의심했을 수도 있지만,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워킹홀리데이 기간에는 누군가와 함께하며 위로를 받으려 하기보다 '고독'에 맞서야 한다.
그리고 구직 활동과 호주 취업에 있어서는 Official 한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닌 이상, 낯선 사람들의 호의를 무작정 받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했다면 그게 뭐든지 최대한 스스로 해보는 게 좋다. 친구를 만들지 말라는 의견이 아니다. 나처럼 모자란 사람도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며 지냈었다. 다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Self-control을 잘해야 한다.
'낯섦과 외로움'을 즐길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해도 좋다.
호주 워홀, 일자리는 빨리 얻고 사람은 느리게 알아가자. For your better working holiday.